반응형

언제부터인가 나는 나를 찾고 싶어했다.

남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닌 나를 위한 삶을 살고 싶어졌다.왜냐하면 내가 중심을 잘 잡고 있어야 남을 도와주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를 찾는 생각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시간과 생각만 있다면 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저 자위행위에 불과했다. 진정한 '나'라는 것은 생각으로 알아낼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남이 보는 나의 모습이 진짜가 아닐까?

우리는 사회적인 동물이다. 남들이 보는 나 또한 나임을 인정해야한다. 아니 인정을 넘어 그것이 나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매일 피시방을 하는데 나 자신이 언젠가 성공할 사람이라고 정의를 내린다고 해보자.

 

남들이 보는 나는 성공할 사람이 아닐거다. 그런데, 오로지 나만이 나를 성공할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정상적이지는 않다. 남들이 보는 것이 '진정한 나'라면 나는 도대체 왜 나를 찾고 싶어 했을까?

 

나는 기준이라는 것이 없다.

삶에서 기준이라는 것을 정해놔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거절을 할 줄 알고, 수락을 할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것들이 약했다. 거절을 해야할 때 거절하지 않아서 매일 같이 괴로워 했고, 수락을 해야할 때 수락하지 않아서 후회를 했다.

 

그것은 나의 '가치관'이 올바르게 정립이 되지 않은 상태로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생긴 일이다. 처음에는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점점 나아지고 가치관이 확립이 될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한번쯤은 기준이라는 것을 세워둬야만 앞으로 발전이 있는 것 같다. 생각을 정리를 해두지 않으면 같은 일이 닥쳤을 때 같은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에 대한 기준

나는 어떤 것을 좋아한다. 나는 어떤 것을 싫어한다. 라고 미리 정해두는 것은 자신의 가능성을 닫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것을 정해두지 않는다면 원하지 않는 일을 계속해서 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자신의 성향을 파악하고 성향에 맞게끔 살아가는 것 또한 행복의 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나를 찾는 일을 하지 않고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에 대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

 

어떻게 기준을 세우지?

경험을 해보았던 일이라면 빠르게 내가 그것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알 수 있다.  경험도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단정지을 수 없다. 하지만, 그래도 비슷한 일에 대해서는 호불호를 알 수 있다. 예전에 내가 싫어하는 일이 '사람을 만나는 일'이라면 비슷한 일들은 싫어하는 것으로 묶을 수 있다.

 

기준을 세운다고 해서 무조건 그 일을 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나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싫어하는 일을 해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기준을 알고 그것을 이겨낼 마음을 먹고 시작하는 것과, 기준이 없이 끝없이 불만을 표출하면서 일을 병행하는 것은 다르다.

반응형

+ Recent posts